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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본문

문화생활 Aro's Review/책 Book

[감상]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호두과자(walnutsnack_) 2021. 11. 29. 01:30

*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 발췌

 

* 시 해석

 

기형도 시인에게 책갈피, 책, 종이는 사람의 내면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오래된 서적이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흔해빠진 독서 같은 시로 미루어보았을 때 더더욱 확신에 듭니다.

 

그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힘없는 책갈피가 이 종이를 떨어뜨린다고 해요. 이 종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 다음 행의 '그때 내 마음'이라고 읽힙니다.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희망을 성취하고자 했던 마음과 기대가 시간이 흐르고 허망해졌음을 말하는 것 같아요.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하고 그것만큼 허망하고 괴로운 것이 없으니까요.

 

보았으니, 않았으니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괴로움을 토해내는 시로 볼 수 있고 그 고통은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마지막 두 행에서 적나라합니다.

 

 

* 감상

 

에 대해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건 일종의 치유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숨길 수 없는 강렬한 색채를 띈 깨달음을 옮겨냄으로써 여러 색이 겹쳐 까매졌던 마음을 밝게 할 수 있으니까요. 유일하게 섞이면 섞일수록 밝아지게 하는 색은 사랑일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믿음이기도 하겠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곧 자신을 못 믿는다는 것이죠. 자신을 못 믿으면 남도 못 믿고요.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제자신을 사랑의 색으로 다 채우지 못해 때때로 쉽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좌절의 원인이 다 제게 있었음을 깨달았던 날이 떠오릅니다. 모든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건 저였습니다. 남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면 무척 가벼워졌겠지만 그러진 못했습니다. 변하고 싶었으니 온전히 짊어졌는데요.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럽고 서러웠죠. 우울이 가슴께를 눌러 질식에 몸부림치던 어린 날의 그 아픔처럼 참 괴로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고 잘못된 행동과 마음을 가림막 없이 보게 된 순간의 허망함은 몹시도 컸습니다. 

 

그때 썼던 글 한 조각은 저 멀리 잠시 보내놓았습니다만 그 글의 느낌은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와 같았습니다. 제 한탄을 쓰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을 곳으로 찾아갔음에도 혹시나 들릴까 소리 죽인 채 울었죠. 댐이 터지면서 생긴 좁은 길로 물이 꾸역꾸역 토해지듯이 아픔을 쏟아냈죠.  

 

그 깨달음부터 고작 만 한 해가 넘었을 뿐이지만 그때를 한참을 애써야 간신히 떠올리는 지금은 그 순간이 있었음에 한 걸음 더 내딛었다고 피부로 느낍니다. 내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작게라도 있어야 다음을 위한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기형도 시인의 삶을 다 알지 못하지만 기형도 시인이 이 시를 쓴 이후로 생활을 이어나갈 때에 다시금 움직일 힘을 받았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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