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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연민에 대하여 본문

문화생활 Aro's Review/책 Book

[감상]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연민에 대하여

호두과자(walnutsnack_) 2021. 11. 1. 13:30

 

* 작성일: 10월 31일 2021년 일요일

* 작성 계기: [윤서아] 팬카페 서아의 사서함에서 독서모임 2, 3회 차 이후 생각 정리. 약간의 사담도 있음.

 

* 이전 글: [감상] 윤서아 배우의 추천 도서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 독서모임 2회차 감상 순서: 물 속의 사막 -> 위험한 가계 1969 -> 너무 큰 등받이의자

* 독서모임 3회 차 감상 순서: 오래된 서적 -> 흔해빠진 독서 -> 질투는 나의 힘

* [링크모음] 아로 온라인 독서모임

부제 : 연민이라는 무저갱

*무저갱(無低坑, Abyss): 바닥이 없이 깊은 구덩이 

 

알면 알수록 기형도 시인은 참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젊은 나이에 떠났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이 세상에 멋진 시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기형도 문학관에 어제 출간한 새로운 시집을 직접 전시하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성인이 된 자녀들을 보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흔히들,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하죠. 그래서 쉽게 완전히 이해한다 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에 나와 살다 보면 점점 어릴 때는 이해 못했던 부모님의 행동과 생각을 피부에 묻은 물기처럼 느끼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한없이 커보였던 부모님의 등이 왜소해 보이는 시기도 이때쯤에 시작하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받은 애정과 관심을 깨닫고 또 지난날에 대한 이해와 함께 피어나는 연민은 잘 다듬어진 정원에 난 자그마한 산책로처럼 단단하고 포근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요? 우리는 종종 뉴스를 접할 겁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도 있고요. 형제 간의 우애가 돈독하고 부모와의 관계도 튼튼한 가정도 있는 것을요. 경제적으로만 가난하느냐, 온정까지 가난하느냐. 경제적으로는 부유한데 온정이 가난하여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아이들도 보셨을 거예요. 기형도 시인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기만 했던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병으로 인하여 모든 식구가 관심을 주지 못 했습니다. 

 

위험한 가계 1969에서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중략)...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라 시인은 말합니다. 기형도 시인이 사망하고 나서야 어린 막내아들의 고독을 어머니는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죄가 없습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시기가, 상황이 참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참조: 친누나가 본 기형도 시인의 삶과 죽음) 안타깝게도 어린 마음에 받는 상처는 그것도 고독은 길게 남습니다. 심지어 누이에게 불운한 사고까지 있었으니 그 상처의 깊이는 차마 짐작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한국이라면 당장 아이에게 심리상담사를 붙이고 치료를 받게 해야 마땅한 일이죠. 

 

치료하지 않는다면요? 그거 아시나요, 가벼워 보이는 접촉사고도 후유증이 남고 이는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군요. 하물며 어린 마음에 입는 상처라면요? 나아도 쓰라린 깊고 깊은 흉이 남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흉을 감정의 골이 생겼다고 표현하죠. 흉 진 건 완전히 차오르지 않죠. 사라지지 않고 흔적이 남습니다.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골은 상처를 입힌 상대와 내가 함께 손을 잡아 그 위를 온기로 채우면 아프지 않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복잡한 마음이 <물 속의 사막>에서 드러납니다. 창문에 비친 추억에서 아버지를 곧 자신과 겹쳐보죠. 그리고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라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기형도 시인이 자신의 삶을 살면서 어쩌면 아버지를 흐릿하게나마 이해하고 연민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연민은 <너무 큰 등받이의자> '아버지, 불쌍한 내 장난감/내가 그린, 물그림 아버지'에서 저는 느껴진다고 봅니다.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괴로운 어린 시절을 안겨준 이유가 되어버렸고 깊은 상처를 품은 시인은 늘 외로웠습니다. 

 

온기를 채우지 못한 골 위에 놓인 연민은 어떤 형태일까요. 저는 그게 얼기설기 엉성한 밧줄과 크기가 각기 다른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흔들 다리라 생각합니다. 간격이 들쭉날쭉하게 만들어진 다리는 입김 한 번으로도 크게 요동칠 것이고요. 어느새 놓인 흔들다리 위에 삭힌 질문을  발밑 골에 토해낸다면, 감정의 골에서 올라온 쓰라린 바람이 질문을 그저 되돌려준다면 눈물샘마저 메마를 것입니다. 집안을 뛰쳐나와 홀로 지내는 기형도 시인은 불안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오래된 서적이라 하고, 질투만이 그저 그의 힘이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품은 감정은 이해와 애정과 연민과, 감정의 골. 애증이 아닐까요. 싫음과 좋음은 강렬한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동시에 있다는 건 하루에도 수차례 분노하다가 사랑하기를 반복할 수 있는 거죠. 현실에 치이고 또 바싹바싹 감정은 불타오르고 남은 건 잿가루. 싫은데, 연민이 들어 자꾸 마음이 간다면. 그 연민이 드는 것 자체가 싫은데, 싫어하는 자신을 또 싫어하게 된다면 결국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아를 바라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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