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롭게 평화로운
[감상]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일회독 본문
이 시집에 대한 감상은 여러차례 읽을 때마다 올리겠습니다. 왜냐고요? 처음 읽으면서 느낀 충격이 너무 컸거든요. 이 시집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을 때처럼 제 감상이 일관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하며 살던 저에게 너무도 너무도 어려웠거든요. 시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제 두뇌의 어느 부위가 언어를 관장하는지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직 시집 끝에 있는 해설도 안 읽었고 그나마 감성 있는 친동생이 친절히 설명해주려고 하는데, 일단 이 날 것의 감상을 써야만 할 것 같네요.
중간중간 육성으로 '이게 무슨 소리야?'가 튀어나오고 괜히 시야가 흐려지고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책을 봤어요. 수십 년 간 인공물로 막혀있던 청계천이 뚫렸을 때 쏟아진 고인물이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아닐까 싶었고요. 여태까지 제가 써온 언어는 방금 땅에서 캐낸 고구마 같다고 생각했어요. 얼레벌레 흙을 털어서 상대에게 툭 던지는 생고구마요.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애써 잘 씻어서 한 입거리로 썰어주지만 텁텁한 맛이 있는 생고구마 언어요. 반면에 시인의 언어는 아주 깨끗하게 잘 씻어서 찌고 버터와 설탕을 뿌려서 목 메이지 말라고 우유까지 챙겨주는 섬세함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공대생과 예술인의 차이입니까? 감성 넘치는 중2때도 쌓이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아, 저거 쌓이고 녹다 말면 길바닥 미끄러운데' 라는 감상만 뱉는 제 감성으로 이 시집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요.
그래도 로봇 같은 사고에서 벗어나 감성을 배워보기로 했으니 여러 차례 읽어보려고요. 과연 진짜 시를 온전히 느낄지 알고리즘마냥 뇌에 아주 아로새겨넣을지 두고 봐야겠어요.
다행인 건 그래도 몇 몇의 시는 와닿았어요.
그 중에 두 시를 먼저 필사를 했고요. '있지'는 보자마자 자우림의 있지가 생각나서 노래를 들으며 읽으니 좀 더 와닿더라고요.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맴도는 말, 애써 꺼내는 맘.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얹어 멀리 보내고 싶은 그런 말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사람이 온다는 사실 말장난처럼 다가왔는데 마지막 문단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닫지 못하는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저도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다가왔으면 좋겠네요.
다음에 필사할 '호수'도 맘에 들었습니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다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겨지고. 떠나는 이도 나름의 고통이 있겠으나 남겨진 이의 멍이 퍼지고 있는 사람보다 클까요. 비교를 감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아픈 것 같네요. 영화 '노매드랜드'가 떠오르는 구절이었어요.
적다보니 제 생각보다 인상 깊었던 시가 많았네요. 이것도 꼭 손으로 필사하려고요.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다시 태어나려거든'
충격으로 가득했던 첫번째 독서라 감상이 조금 빈약하긴 합니다.
꼭 정복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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