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롭게 평화로운
[감상] 윤서아 배우의 추천 도서 '아몬드 - 손원평' 본문
2021년 10월 8일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간에 윤서아 배우가 인스타 스토리를 올렸었어요. [기록] 윤서아 배우 인스스 20211008
이때의 인스스, 아로들은 아로징어게임#관련 글 에 빠져서는 달고나에 구멍날 정도로 핥고 있었는데 말이죠. 6장의 인스스는 아로들에게 길고도 긴 여운을 안겨다주었어요 ㅋㅋ 그 드라마틱한 분위기 전환은 잊을 수가 없네요.
이번 감상은 윤서아 배우의 인스스부터 시작할거에요. 첫번째 사진은 혼란을 겪는 아이가 어떤 친구에게 문자로 묻는 것 - 답변은 그 고민에 관심 없는 타인. 두번째는 속 빈 껍데기 공감으로 상처 받아 분노하는 이에 대한 시. 세번째는 의문. 네번째는 차츰차츰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 다섯번째는 받아들이다가도 탈이 날 수 있음을, 타인에겐 괜찮아도 자신에겐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 여섯번째는 윤서아 배우가 직접 쓴 것이라 팬들 사이에서 추측하는 건데요. 앞에 다섯 장의 내용을 이어받듯, 그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 같은 내용입니다.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과 마음을 꼭꼭 씹어삼킨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 윤서아 배우를 생각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프지는 않을까, 지금은 괜찮은 가. 그런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이내 '여러 책들을 곱씹어 내면 속 의문을 해소하는 구나, 그렇기에 공유한 걸까' 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아마도 제가 의문에 대한 답이나 방황할 때 흐트러진 방향을 바로잡을 때 주로 책을 보며 찾아가는 편이라, 그런 저를 투영해 이해한 걸수도 있긴 하지만요. 어느 쪽이든, 엉켜있던 마음을 꺼내 풀어서 돌돌 다시 예쁘게 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날 윤서아 배우가 올린 책의 목록이 팬들 사이에서 공유가 되었고요. 몇몇 팬들은 이미 읽어보아서 눈물진 감상을 쏟아내고 있었고 한 쪽에선 '나도 읽어야지' 하는 팬들도 있었어요. 저도 한 명의 팬으로서 또 윤서아 배우가 궁금해서 가장 첫번째로 올려준 책부터 읽기로 했어요.
※- 스포일러 주의! -※
- 줄거리 요약
소설 '아몬드' 표지에 멍한 표정의 소년, 눈빛이 죽어있죠. 주인공 선윤재의 외양이에요.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차마 말하지 못할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 고독하기만 할 상황에 마냥 고독하지 않은 그의 덤덤함.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듯한 표현들. 감정을 모르는 아이의 성장 소설이에요.
감정을 모른다. 그 감각을 모른다면 '이런 거구나' 할 수 있고, 그 감각을 안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벗어난 이라면 이입할 수 있는 소설이더라고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자각할 수 없는 어린 주인공은 그저 엄마가 하라는 대로 끄덕끄덕이며 하죠. 할멈의 이야기에도 그저 끄덕끄덕. 감정을 모르는 아이는 주변인들에게 금방 이질적이고 괴리감을 느끼게 하죠. 다 큰 성인도, 냉정하고 매정하게 이성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마주한다면 다름을 느끼는 것보다 더 강하게요.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 엄마와 할머니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보이게끔 감정을 입력시키죠.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다 입력하는 것처럼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말은 그저 무채색으로 아이에게 다가갈 뿐입니다. A라는 상황이 오면 B라는 행동을 하렴. 우리가 컴퓨터에 알고리즘을 입력할 때와 같네요.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감정에 무딘 이는 감정을 깨닫기 위해서 일련의 사건을 겪고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에서야 비로소 변화의 필요를 알지 않을까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을 겪고, 주인공과 정반대로 들끓는 감정에 몸부림치는 소년을 만나고 또 밝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도 만나죠.
사이코패스 라는 소문이 돌던 아몬드의 주인공도 주변에서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이겨냈죠. 반면에, 감정을 느낄 줄 알던 이들 중 몇은 극단적으로 넘어가죠. 주인공의 삶을 무너뜨린 남자라거나 곤이라거나. 그들은 기쁨도 슬픔도 느낄 줄 아는 이들이었는데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주변인들이 외면했죠. 지독한 냉기를 뿜는 고독에 몸부림치다 삶을 비관하고 비참한 길을 걸었어요. 그나마 곤은 다행히도 최악의 결말 직전에 주인공에게 구해졌어요.
- 감상
사자마자 다 읽어버린 소설 '아몬드'. 저는 이미 다 커버린 성인이지만 제 내면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 했어요.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거든요. 마냥 궁핍하진 않았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가족과 또 함께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네'라고 하고 싶어요. 힘겨운 시간이 있었지만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거든요. 아쉬운 부분들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 충분히 만족해요.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잔상이 그토록 무겁게 족쇄처럼 이어지리라 생각치 못 했어요.
상처 받는게 두려워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가슴 속에 묻었더니 점점 심층세계로 빨려들어가 어둠에 잠겨버렸거든요. 아프고 배고픔은 느껴도 주인공과 다르게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칠 줄 알았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결국 자신을 잃고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감정을 흉내내기만 하던 로봇인 저와 함께 놀던 좋은 친구가 써준 편지에는 '좋고 싫음을 말하지 않는' 다는 수식어가 있었어요. 그때부턴가 '내가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게 뭐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놀랍게도 아이돌을 좋아 해보고, 그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도 제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몰랐어요. 파란색이 좋은지, 노란색이 좋은지, 싫은지, 무엇도.
성인이 되고 대학 교정에 발을 디딛을 때 찬란해야 할 시기가 서럽게도 밋밋했음을 잊지 못해요. 처음 마주한 흑백영화에 배우의 연기보다 영사기의 깜빡임에 더 눈길이 가는. 흔히 말하는 중2병 마냥 '나는 살아 숨쉬는 게 맞나, 저 사람은 진짜 생명인가.' 따위의 느낌을 받으며 지냈죠. 제 감정의 이름을 모르던 시기는 그랬죠.
어느 날엔가 사람으로서 살아야겠다, 노력하며 날 바꿔야겠다고 작정하게 만든 일이 있었고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외로움을 느끼고, 충만한 교류도 해보고 막막함에 혼자 눈물 짓기도 하고,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서 혼자만의 공간이 없어 내면으로 침잠하던 시기도 있었죠. 그렇게 세상에 던져져 여러 일을 겪고 나니까 감정이라는 혈관에 고여 썩고 있던 까만 덩어리들을 꾸역 꾸역 토해내고 마침내 맑은 피가 돌게 되었어요.
감정마다 이름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예민해졌죠. 어쩔 때는 어린 시절처럼 상처 받기 싫어서 움츠러들기도 했었고요. 그렇게 조금씩 하나씩 감정을 배워나가고 익숙해지며 살고 있지요. 그렇게 되기까지 거쳐온 단계를 돌이켜 보면 핵심은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땅이 아닌 늪일 때 누군가 손을 잡아 힘을 보태줄 것이라는, 무기력한 손에 힘을 불어 넣어 줄 거라는 믿음이었어요.
억눌린 감정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고통을 느낄 때, 세상이 전부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보였을 때, 미래에 대한 희미한 빛을 보고 움직이다가 좌절을 맛 보았을 때. 그때마다 감사하게도 도움을 받았거든요. 진창에 처박혀도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니까 두 다리에 힘이 들어오고 지금까지 왔어요.
그렇게 한참을 제 삶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지금 사회에 대두되는 문제들이 떠올랐어요. 막다른 길에 부딪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과연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걸까요. 그들은 여태까지 도와달라며 살려달라며 외치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들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요?
차가운 시선에 홀로 외로움과 싸우다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 않게끔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온정과 관심을 내민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요. 있는데 외면하고 있을 수 있고요. 오늘 저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따스한 온기를 보내려 합니다. 스쳐지나가는 말이더라도 우리는 그 작은 온기에 내일을 맞이 할 수 있으니까요.
※ 인상 깊었거나, 감정이 동한 구절 ※
-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 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였다.
- 어려운 건 내가 먼저 천 원을 내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를 원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일들. 그런게 힘든 이유는,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버틸 때까지.
- 나중에 할멈에게 물어보니 그 끄응은 '잘 좀 살지, 썩을 년.' 이라는 뜻이었단다.
-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 누가 죽었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힘이 빠지지도 않았는데.
-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 나와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엄마는 내가 모르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 —지난 십육 년간 꿈쩍 않던 머리가 이제 와서 변할까요?
- —예를 들어 주마. … (중략) …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설명하기 힘든, 변화라고 하기도 힘든 변화들.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쉽게 쓰이던 단어들이 혀끝에서 꺼끌꺼끌하게 맴돌았다.
-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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