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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윤서아 배우의 추천 도서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본문

문화생활 Aro's Review/책 Book

[감상] 윤서아 배우의 추천 도서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호두과자(walnutsnack_) 2021. 10. 6. 11:30

(왼쪽 사진)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표지 (오른쪽 사진) 삐뚤빼뚤 필사한 것 모아 찍음

 

출처: 윤서아 배우 인스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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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윤서아 배우의 추천으로 보게 된 거고요. 앞으로도 이 블로그에 올리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 리뷰는 전부 윤서아 배우의 추천 작품만 할 생각입니다.

 

신기해요. 경험을 토대로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딱딱한 순서도로 나타내는 제 자신이 이런 감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영화 <노매드랜드> 리뷰도 제 기준에서는 감성을 온전히 끌어낸 거였거든요 (해당 글로 바로가기: 2021.09.28 [감상] 영화 '노매드랜드') 그 감상을 동생한테 보여주니 로봇이 감성을 마침내 배웠다고 감탄하더라고요. 제 딴에는 감성을 끌어모아서 쓴 짤막한 글을 보여줬을 주고 논문 쓰냐는 소리를 들은 게 불과 일 년 전이었는데 말이죠.

 

 

하여간 이번에도 제멋대로 작성한 감상이고요. 이렇게 덕질이 유익할 수가 있나요 👀 

평소에 감수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의 감상문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좋다, 싫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쉬운 그 감정도 어려워 하는, 무미건조한 편인 저에게 시는 참 어렵습니다. 그나마 쓴 맛이 가득한 감정이 쉬운 편이죠. 그 쓴 맛조차도 다 같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고요. 타고난 건지 모르겠지만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저명한 박사의 심리학 책을 읽고 간신히 깨부순 경험도 있지요. (그때 읽었던 책: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온기가 적은 윗목의 기억과 순간을 담아낸 기형도 시인의 글은 머릿 속으로 따라가는 데에 비교적 어렵지는 않았어요.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가 눈을 사로잡는 문장이 있으면 그 시 전체를 필사했어요. 왜 내가 이 시를 필사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은 손으로 옮겨적을 때 피부로 스며든 깨달음에 해소되었죠. 빠르게 아니면 느리게, 기억 저편으로 밀어넣었던 먼지 묶은 내가 풀풀 나는 순간까지 꺼내오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기 밖에 없었어요.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맛이 느껴져서 혀 끝으로 빈 입 안을 훑었죠.

 

 

처음 필사한 시는 조치원. '서울은 내 등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에 꽂혔죠. 두번째로 필사한 시는 진눈깨비. 현실에서 추억으로, 눈물로 이어지는 부분에 끌렸어요. 세번째는 흔해빠진 독서. 시인을 위로하고 싶었던 부분이었어요. 좋아하는 노래 '돌아가자 - 선우정아'를 떠올렸죠. 네번째는 질투는 나의 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에 끌렸고요.

 

다섯번째 필사한 시는 도시의 눈.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이건 '한숨 - 이하이'가 떠올랐고, 여섯번째 시는 쥐불놀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사람 간의 유대로 우리는 살아간다는 걸 깊이 느끼고 있어서. 일곱번째는 램프와 빵. 현실을 모르고 살다가 부딪쳤던 난관이 떠올랐죠. 그 다음은 종이달의 세 번째 문단이 공감되었고, 마지막은 엄마 걱정. 국어 시간때는 참 뭐 어쩌라는 건지 시큰둥하게 선생님의 설명을 한 귀로 흘리던 제가 떠올라서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한 장, 두 장. 삐뚤빼뚤 옮겨 쓴 시가 흰 종이 위를 채우고 피로 쌓인 손목이 욱신거릴 즘에 유튜브를 키고 글쓰기를 검색했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라는 유명한 시를 쓴 나태주 시인의 강의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나태주 시인이 교도소 수감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갔을 때의 감상 '교도소에 있는 이들이 글을 쓸 줄 알았다면, 그 괴로운 마음들을 종이에 풀어냈다면 그 곳에 그들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을 듣고 다시 한 번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해당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고독과 후회로 가득 차 보이던 시가. 그 위로 겹쳐지는 기억도 감정도. 조금은 달라 보이더라고요. 떠다니기만 하던 감정에 드디어 이름을 줄 수 있었어요.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됐죠. 기형도 시인은 그토록 생생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어 내일을 살았던 걸까, 서툴게 쏟아내던 지난 날의 내가 있어서 나는 지금을 누리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하며 책갈피 해둔 부분들을 찾아 읽었죠. 그리고 기형도 시인의 삶에 대해 찾아 보게 되었어요. (정독한 기형도 시인에 대한 기사: 친누나가 본 기형도 시인의 삶과 죽음) 찾아보는 데에 사실 그렇게 많이 시간을 쓰지는 않았지만요. 땅거미에 잠식된 지상인 줄 알았는데 구름 사이로 북극성이 보이는 밤하늘 같은 시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리뷰는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거나 영화 변호인 입니다.

 

 

제멋대로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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