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롭게 평화로운
[감상] 시 84p_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본문
* 윤서아 배우의 추천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감상글
* 주로 책 한 권을 전부다 읽고 감상을 쓰는 편이지만 시집은 시 하나 하나마다 곱씹고, 생각하고, 찾아봐야 할 것이 많네요. 그래서 나눠서 감상을 써보려 합니다.
* 2021년 8월 11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중 팬의 질문 제일 좋아하는 시집에 대한 답
* 이번에 인상 깊었던 시
84p
받아놓은 일도
이번 주면 끝을 볼 것입니다
하루는 고열이 나고
이틀은 좋아졌다가
다음 날 다시 열이 오르는 것을
삼일열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젊어서 학질을 앓은 주인공을 통해
저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다행히
그는 서른 해 정도를 더 살다 갑니다
자작나무 꽃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암꽃은 하늘을 향해 피고
수꽃은 아래로 늘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입니다
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
옷을 힘껏 털었고
그 소리를 들을 저는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 감상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마다 그 순간의 우리에게 맞는 고비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첩첩산중. 한 고비를 넘어도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는 거죠. 매 걸음이 항상 무탈할 수는 없습니다. 평지이지만 유독 지치고 힘들 때도 있고, 언덕이지만 유달리 발걸음이 가벼울 때도 있고, 너무 가파른 경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궈질 정도로 힘겹게 올라갈 때도 있습니다. 간신히 한 자리 될 공간에 구겨넣듯 몸을 넣고 비명 지르는 근육에서 어렵사리 힘을 뺍니다. 우리는 나약한 것 같으나 그렇게 끝까지 살아갑니다.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 할 것들을 짊어지면서요.
이것은 제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입니다를 기점으로, 앞선 이야기는 책에서 본 타인의 이야기처럼 그 뒤는 함께 지내는 사람이나 혹은 중요한 사람에게 중점을 두는 듯 합니다. 아까 그 타인의 이야기는 늦은 오후에 일어난 당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의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 들은 것을 표현한 거죠.
시간이 흘렀습니다 창밖으로 / 겨울을 보낸 새들이 /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에서 시린 겨울에서 따뜻한 봄이 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각자의 삶을 살다가 힘겹게 운명처럼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고 사는 것으로 끝맺음이 납니다.
백 명을 만나면 그 중에 소수만이 나와 오랜 인연을 맺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맞물리며 살아가지만 그 사이에 교류가 적거나, 안 되어서 홀로 살아가는 느낌을 받아요. 아픔을 알아주고 기쁨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이죠. 화자도 당신도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갈 온기 가득한 미래가 엿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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