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롭게 평화로운
[감상] Netflix 먼 훗날 우리 본문
* 이 글은 윤서아 배우 인스타그램 #해당피드 에 올라온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 를 보고 쓰는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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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꿈을 키운다는 것은 흔히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일을 구하는 것도 집을 구하는 것도 이미 해당 지역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과는 시작점이 많이 다릅니다. 그 속에서 남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여주는 흔한 쳇바퀴 같은 삶이 아닌 남자를 잘 만나 넉넉히 사는 꿈을 꿉니다. 희망을 품고 베이징 땅에 내딛은 지 몇 년이 지난 둘은 막연한 미래 속에서 서로 힘듦을 나누고 지지해줍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알고 지낸 고향 친구처럼 보여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보이는 여주는 남주네와 함께 춘절(중국의 대명절)을 익숙하게 보내요. 남주는 어머니를 아주 어릴 때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모두가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시골 동네에서 조용히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지겨운가 봅니다. 아버지를 대할 때 말투와 몸짓에서는 귀찮음과 지겨움이 뚝뚝 떨어지는데 반면에 여주를 보는 눈에선 연심이 한껏 묻어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제품 소매상으로 일을 시작한 남주와 여러 아르바이트를 돌며 같은 건물 전자제품 소매상으로 일하는 여주. 각자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해요. 그러나 둘의 관계에는 특별한 진전이 없어요. 왜냐하면 여주는 남주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고 돈 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베이징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싶어 하거든요. 어디서 어떻게 만난 건지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여주는 이상한 남자들만 만납니다. 마마보이 거나 유부남이거나 하죠.
여주를 짝사랑하는 남주에게는 참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게 뭔데?'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법 도하죠. 그러나 계속해서 지위는커녕 직업도 돈도 없어서 저런 말도 안 되는 남자들에게도 가려지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함께 일하던 친구들은 각자 고향으로 자리를 잡으러 떠나버리고 원래의 꿈도 한없이 막연하기만 한데 여주의 바람은 터무니없이 높기만 하죠. 바닥 없이 추락만 하는 자존감은 긴 상처를 내었을 것입니다. 결국 내세울 수 있는 건 '난 저 사람들과 다르게 정말 널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 뿐일 겁니다. 이미 짓이겨진 자존감과 여주의 무관심을 충분히 아는 그는 그마저도 크게 말할 수가 없어요.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지갑이 두둑해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속담이죠. 그런 지갑이 가냘퍼도 밝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건 희망에 대한 믿음 혹은 애정이에요. 서로를 의지함으로 애정으로 그렇게 버텨내다 이내 눈이 맞아요. 문제는 남주는 그토록 바라던 관계가 이어졌다 생각했겠지만 여주에겐 그저 취기에 저지른 일에 불과했나 봅니다. 남주가 잠시 나간 사이 짐을 빼 도망가버리고 며칠 만에 닿은 통화에서는 '친구'로 남을 수 있겠냐는 말로 그의 마음을 난도질 해요.
그 이후 일 년을 떨어진 채 지내다 다시 돌아온 춘절에 남주를 향한 마음을 깨달았는지 다시 만나러 갑니다. 노점상으로 돈을 벌던 그는 교도소에 들어갔고, 그런 남주의 상황을 알게 되면 남주의 아버지가 걱정할까 둘러댑니다. 남주 아버지에게 받은 음식을 출소한 그에게 건네요. 걱정하실 까봐 여자친구인 척 했다더니, 남주에게는 남자친구 생겼다고 '남주'의 특징을 남자친구의 특징인 척 말하다 그에게 입을 맞춥니다. 남주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는지 받아들입니다.
짧은 굶주림도 진한 기억을 남깁니다. 둘이 겪는 건 아무것도 없어도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여전한 밑바닥 같은 생활.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그린 것보다 한참을 못하다면 그만한 비참함도 또 없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는 춘절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남주는 무리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있는 척을 하죠. 어거지로 세운 자존심은 상처를 받고 타인의 말, 작은 몸짓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요. 화를 못 참고 싸우고 무너져 내립니다.
결국 둘의 사이는 끝이 나고 더는 떨어질 곳이 없어진 그는 계속 계획하던 바를 행동으로 옮겨요. 잃고 이루고 닿았으나 이미 깨진 관계입니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남주의 아버지였고 마지막이었던 기회는 끝내 말다툼으로 날아가버려요. 그의 말속에서는 깨진 자존감이 바스라져 잘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이고, 여주는 여전히 베이징을 겉돕니다. 서로를 향한 미련은 오랜만에 재회한 비행기에서 숨김 없이 드러나요. 과거를 되짚어가며 덮어두었던 상처를 꺼내고 확인하고 서로를 이내 인정해요. 끝나버리고 돌이킬 수 없던 한없이 어설프고 어리기만 하던 서로를 마주한 그들은 진정으로 이별을 고합니다. 자리를 잡은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를 여주에게 주고, 여주는 남주의 아버지가 남긴 사랑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짧게 쓰고 싶었던 요약이 꽤나 길어졌네요. 쓰면서 여러 생각과 감정이 오갔어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과거에 받았던 상처나 스쳐지나가는 말이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 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당장 피가 나고 있는 까진 상처와 흉터의 차이일까요. 신체적인 문제에는 그토록 예민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선 소홀한 우리가 보이더군요.
주인공 둘 다 상처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난 상처는 낫지 못해 계속 쓰라리다 서로를 할퀴게끔 해요. 가정에서, 서로에게서 상처를 입고 줍니다. 남주의 아버지를 향한 반발심도 그 중 하나였겠고요. 여주는 의도치 않게 남주에게 계속 상처를 입혔고 안 그래도 본인의 처지를 체감 중이고 싫어하던 그에게는 꽤나 자격지심을 안겨주었을 겁니다. 이 모든 게 '난 괜찮아' 하면 넘길 수 있는 것일까요.
상처가 있다고 해서 여주와 남주의 행동을 두둔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이 채우려 했던 허영심, 공허한 자존심에 이어진 선택들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을 통해 보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난 상처와 기억을 무시하고 있진 않나요. 타인에게 준 잘못된 행동을 그저 무마하려고만 하진 않나요. 괜찮다고 지난 기억을 덮어버리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잠시간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여 단기간은 풍요롭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공사로 지어진 댐은 이윽고 터지기 마련이에요. 특히나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어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때로는 이 영화 속 여주처럼 때로는 남주처럼 굴 때가 생길 수 있어요. 그 누구도 항상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죠. 그에 대한 자각 없이는 최악의 경우엔 끝도 없는 자기파괴와 타인을 공격을 일삼는 사람이 되기도 하죠. 결국 무엇도 남지 않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스스로를 돌봐야 합니다. 내 안의 상처 입은 나를 찾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그리고 그렇게나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온 자신을 인정해주세요. 그 다음에 타인을 들여다봅니다. 대체로 그들 또한 상처투성이거든요. 자신들이 다친지도 모르고 버겁게 달려오다 탈이 났을 가능성이 높죠.
이들을 굳이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나 한 번이라도 들여다 봐주세요. 그렇다면 용서가 따라올 것 입니다. 이미 지나간 인연이라면 지나간 인연임을 인정하고 그때의 상처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봐주세요.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상처가 반복되어 생채기 입히지 않게끔 노력해주세요. 자신이 상처 입은지도 모르고 지쳐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사랑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들로서 살아가요. 상처에 울고 괴로워 하지만 사랑에 낫고 희망을 보죠. 후회를 또 남기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줄 수 있게 낯간지럽다면 살포시 조금 용기 낼 수 있다면 직접 사랑을 고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먼 훗날에도 우리는 계속 함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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